"삶은 여행이다"라는 화두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삶이 왜 여행일까? 여행은 떠나는 시작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까지 치밀하게 준비하고 일정을 계획하고 예산을 책정한다. 그리고 숙소를 정하고 가야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 즐기고 기뻐할 곳을 찾는다. 그러나 때론 계획에 없었던 만남이 있고, 예정했던 차를 놓치기도 하고, 차가 펑크가 나서 일정이 늦춰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구름 사이로 비추이는 햇살을 보며 위로를 삼고, 꽃을 보며 향기를 맡고, 비에 젖은 옷을 말리며 무지개를 볼 때도 있다.
그런 여행의 굴곡 과정에서 종국적으로 집으로 갈 날을 기대하는 향수병도 생긴다. 이런 비유에서 하나의 차이만이 생긴다. 여행의 시작점과 집으로 돌아가는 종착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부모나 피부색, 인종이나 성(性)에 대한 아무런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여정, 인생의 여정은 시작된다.
다른 모든 여행처럼 삶의 여정도 끝이 온다.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오랫동안 조금씩 악화될 수도 있다. 하여든 삶의 여정에는 끝이 온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역시 아무런 선택권을 갖지 못한다. 여정의 끝을 무시하거나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삶의 여정이 끝이 있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며 찾아와서 우리를 공평하게 만든다.
아픔은 매일 함께 하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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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겉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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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림출판 |
빌리 그레이엄. 지난 40년 동안 줄곧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10인의 목록에서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이 시대의 거장이다. 그는 지금 전립선암과 뇌수종으로 삶의 여정 막바지에 서 있다. <인생>(원제: The Journey)은 그의 삶의 여정을 기록한 마지막 여행기다. 인생이 마지막을 정리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삶의 경험을 통한 본질과 핵심을 담게 된다는 점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인생>은 단순히 자서전이거나 삶을 나열한 일기가 아니다. 그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교과서 같은 '인생 여행 경험록'이다. 여행 코스는 어떻게 잡아야 하고, 어디서 멈추어야하며 삶의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지침을 말한다. 그리고 삶의 여행 중 차를 놓치고, 차표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위기를 대처해야하는지를 가르치는 처방전도 있다. 특히 그는 "아픔은 매일 함께하는 친구다"라고 말하면서 고통이 인생 여정의 한 단면인 것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빌리 그레이엄은 자녀를 잃은 아픔을 겪었고, 아내와 본인 자신도 질병의 손짓 앞에 흔들리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나타난 삶의 여행 마지막 길인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근원적인 집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인생 여행 보너스 티켓 '용서와 사랑'
그의 그러한 삶의 철학이 대중들에게 뿐만 아니라 리더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친 것은 빌리 그레이엄의 삶의 여행 방법론이 본보기가 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집회 때마다 수만 명의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끌어 들인 저력, 미국 34대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시작으로 모든 역대 대통령들이 그를 가까이 두고 싶어 했던 저력은 그런 삶을 증거해 준다.
빌리 그레이엄은 지금까지 단 한번의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고, 흠잡을 데 없는 인격과 투명한 기관(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운용, 그리고 복음전도자로서의 흔들림 없는 행보가 밑바탕이 되었다. 때론 그를 만났던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정치적이라는 오해를 받았지만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의도였지 그의 가치관과는 무관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워터케이트 사건 당시 닉슨 대통령의 녹취록이 공개되었을 때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충격의 수렁에 빠졌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그러나 그는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기 전날 경비행기를 띄워 대통령 관저 주위를 비행하도록 했다. 비행기 꼬리에는 '닉슨,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우리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깃발을 달았다.
빌리 그레이엄의 삶에는 그런 '용서와 사랑'이라는 인생 여정의 중요한 테마를 놓치지 않은 인물이다. 그에게도 감정을 격하게 하는 일들, 사람이 준 상처들, 그리고 넘어드리려는 유혹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서와 사랑'이라는 가치 있는 인생 여정 보너스 티켓을 잘 활용한 인물이었다.
영광스런 소망으로의 행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미래는 만들 수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 든 지금까지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린 모든 결정과 사건도 우리 삶의 역사에서 절대로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미래는 과거의 복사판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건축가가 새로운 건물의 설계도를 그렸다면 그 건물을 짓는 일이 남아 있다. 작곡가가 곡을 썼다면 연주하는 일이 남아 있으며, 요리사가 요리법을 발견했다면 요리하는 일이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있다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간섭 하에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인생을 혼자서 살도록 내버려 두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하고, 인도하고, 돕는 헬퍼이며, 더 나아가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래는 영광스런 소망으로의 행진이다. 죽음을 넘어서도 더 나은 집으로의 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정된 미래 여행은 기쁨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대하고 항해사를 신뢰하는 것에 인생 여행의 핵심이 있다는 것을 빌리 그레이엄은 주장한다.
삶은 여행이며 인생은 여정이다. 시작과 과정과 끝을 가진다. 비리 그레이엄의 마지막 역작 <인생>을 통해 내 삶을 점검해 보자. 그곳에 인생여정 스케줄이 있나니….
글* 나관호(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북칼럼니스트, '나는 이길 수밖에 없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