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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컬쳐 |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홀트아동복지회로 봉사활동을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14살 뇌성마비 소녀가 나를 울렸었다. 어린 시절 장애아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자살을 경험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나에게 자작시를 써 주었다. 나는 그 아이와의 경험 이야기와 장애아이의 시를 교회 회보에 발표를 했다. 마음에서 나온 글이라서 그랬는지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영화 <허브>를 관람했다.
오프닝 시퀀스 첫 장면부터 배우 강혜정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역 배종옥의 실감나는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켰다. 그 동안 스크린이나 TV브라운관을 통해 그 누구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두 여배우가 극 중 일곱 살 지능의 순수한 딸 상은과 그 딸의 영원한 친구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엄마 현숙으로 열연은 두 배우가 최고의 연기파 배우임을 증명했다.
사랑과 생명의 아이콘
영화 <허브>는 이 연기파 두 배우가 만나 모녀간의 끈끈한 정을 그려낸 따뜻하고 가슴시린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영화 속 '허브'는 사랑과 생명의 아이콘이다. 그 아이콘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허브야, 내 소원을 들어줘. 내 친구 허브야. 잘 자라고 있지? 내가 매일 물도 주고, 햇볕도 쏘여주니까 얼릉 얼릉 자라서, 향기 퐁퐁 띄워서 내 소원을 이뤄주는 거야.
영원히 일곱 살의 지능 가진 인생 지각생, 남다른 종이접기 재주를 가진 정신지체 3급의 상은이가 말한 대사다. 상은이에게 '허브'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기도 했다. 상은이는 허브에게서 생명의 소중함과 사람마음을 알게 된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보게 한다
영화 <허브>가 소리 없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영화 주인공들이 특별하지 않은 우리들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꽃집을 운영하며 혼자 몸으로 딸을 키우는 씩씩한 아줌마 현숙, 현숙에게 최고의 격려자인 수다 친구 미자, 뺀질대면서도 속마음 약한 교통의경 종범, 그리고 어른보다 속이 깊은 초등학생 영란과 승원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영원한 일곱 살 상은이까지, 그들은 우리가 한번쯤 만났음 직한 인물들이다. 아니 우리 곁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건들도 우리가 겪었던 혹은 겪게 될 이야기다. 서로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엄마와 딸, 사랑에 처음 눈 뜬 시행착오 투성이 연인들, 그리고 그들의 준비되지 않은 이별도 그려진다. 영화 <허브>는 그렇게 우리들에게서 멀리 가지 않는다. 가까이 있기에 더 신선하고, 꼭 필요한 산소 같은 이야기를 허브 향기 같이 잔잔히 품어 낸다. 허브 향은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말한다.
어린아이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영원한 일곱 살의 마음을 가진 상은. 어리고 연약하지만 마치 은은하게 가득 퍼지는 허브 향처럼 주변을 순수함으로 가득 물들인다.
영화 <허브>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일곱 살 상은이의 마음이 되어 세상을 보게 된다. 순수한 일곱 살의 마음으로 동화 속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초등학생 친구들에게 고민을 상담하며 꿈꾸고, 설레는 마음을 만들어 내고. 바로 그 나이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상은이는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 우리가 잊고 있던 그 향기로운 시절을 되돌려 준다.
그리고 <허브>는 각박하고 거칠다고만 말해지는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말해준다. 영화가 끝난 뒤 허브 향처럼 가득 퍼지는 행복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을 것이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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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있는 삶을 역전 시킨다
'장애 아이는 세상살이가 불행할지 몰라' '그런 아이의 엄마는 매일이 슬프고 고역일지도 몰라' '정신지체아를 정상인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정신지체아는 세상에 온전히 홀로 설 수 없을 거야'... 이런 것들은 세상이 가진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허브>는 '지체'는 조금 늦은 것일 뿐이고, '장애'는 조금 더 힘이 드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늦은 만큼 천천히 세상을 볼 수 있고, 힘이 드니까 주변과 더 속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 금방이라도 잎을 떼어낼 것 같은 연약한 허브 잎 같은 상은이, 세상 속에서 더없이 약하고 부족해 보이는 상은이가 사랑을 한다. 이별의 아픔도 배운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관객은 세상의 모든 슬픔과 상처가 치유되는, 불가능할 것 같은 모든 소망이 이뤄지는 감동을 눈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상은이의 세상살이를 보고 즐거워하며 웃음도 짓는다. 안타까움과 부러움도 느낀다. 엄마 현숙의 죽음 앞에 '슬픔의 카타르시스'도 체험한다. 예고 없었던 엄마의 긴 여행이 상은과 관객들에게는 큰 슬픔이지만 그 슬픔으로 빠져 나간 빈자리에 다시 커다란 무언가가 차오르게 한다.
상은은 사랑과 큰 이별을 통해서 새로운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를 쓴다. 흥미 있는 것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상은의 미래인생을 관객들이 응원해 준다는 사실이다. 상은이를 그만큼 실제 인물로 착각하는 것이다. 현실과 창작이 만나는 교차점에 <허브>가 있다. |
나관호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나는 이길 수밖에 없다><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