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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투스의 승부수> 책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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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담 |
천년 제국 로마는 끝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세계인의 삶을 지배하는 로마인들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로마를 일컫는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들의 리더십에 대해 '지도자는 자기 뱃속을 채우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거대한 저택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로마에선 개인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 거의 다 공공의 유적이다. 업적을 올리고 싶으면 공공의 건물을 기증함으로써 자신을 알렸다. 지도자가 자기 뱃속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공중을 위해 일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가 1000년 동안 유지된 또 다른 비결이라고 시오노 나나미는 말했다.
그러나 로마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로마 문명은 그 양면성으로 우리를 계속 매혹한다. 고대 로마는 극도로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매우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최고로 사악한 야만 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사회였다.
<나폴레옹>,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의 작가, 막스 갈로가 로마 제국에 대해 쓴 로마 인물 시리즈 중 세 번째 책 <티투스의 승부수>는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인 중에서 흥미로운 개인사를 가지고 있는 일대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티투스의 승부수>는 로마의 대 유대 전쟁을 이끌고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예루살렘을 점령한 티투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저자는 고대 로마가 최상의 정묘함과 극도의 잔인성이 공존하는 사회였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와 닮아있다고 이야기한다. 법의 창시자, 건축의 대가, 도시 계획가, 시인, 철학자로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로마인들에게서 최상의 정교함과 세심함을 느낄 수 있는 반면,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 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자살을 하며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로마인들의 모습에서는 극도의 잔인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묘함과 잔인성의 공존은 지식의 축적과 고도의 기술로 고급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극도의 잔인함을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를 몇 단어로 표현하면 자유, 권력, 성공을 들 수 있다.
자유는 힘이다.
"정복한 민족으로부터 로마가 비난당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로마는 결코 심판당하고 공격당하는 걸 용인할 수 없습니다. 로마에 대항하는 민족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힘을 가진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팍스 로마나'를 외쳤지만 그것은 지기들의 이익을 위한 평화구호였다. 그들에게 자유는 곧 힘이었다. 고대 로마 시대, 로마 주변국들은 모두 로마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로마에 정복된 민족들은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정복되어 노예가 된 사람들은 몇 푼의 돈에 팔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만 하는 말하는 짐승, 말하는 도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뜻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노예로 사느니 고통스럽지만 자유로운 죽음을 택한 스파르타쿠스와 노예들은, 같은 염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힘이 된 후에야 잠시나마 자유를 누리다 자유인으로 죽을 수 있었다.
권력은 쾌락이다.
"전쟁을 치르려면 우선 양식을 마비시켜야 하지요. 승리를 거두고 싶다면 잔인해져야 합니다. 그 어떤 적도 잔혹함 앞에서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까요."
고대 로마 시대, 황제들은 로마 최고의 자리에 앉아 신과 같은 권력을 휘둘렀다. 로마 제국 5대 황제인 네로에게 권력은 쾌락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권력의 극한에 앉아 어머니와의 근친상간, 공공연한 외도, 동성애, 원형경기장에서의 살육 등 온갖 기상천외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인간이 맛볼 수 있는 모든 쾌락을 경험하고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펼쳤다.
하지만 누구도 황제의 행동을 판단하고 비난할 수 없었다. 네로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라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고대 로마의 황제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절대권력을 가진 신분이었다.
성공은 도덕이다.
"나는 오직 나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느니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시오. 하지만 나는 로마의 적들은 가차없이 다룰 거요. 당신은 나와 함께 유대에 있으면서 내가 싸우고 벌주는 것을 보았소. 하지만 제국과 황제를 혼동해서는 안 되오. 죽음의 신이 나를 찾아온다 해도 로마는 존속할 것이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도덕적이라는 것은 바로 성공을 의미했다. 성공하면 모든 것이 성공자의 기준에 맞춰졌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은 권력이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죽인 네로도, 수차례 참혹한 전투를 치른 끝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티투스도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았다. 그들이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가 주변의 모든 민족을 점령하고 굴복시킬 수 있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신이 그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이 정당하던 그때, 그 누구도 신들이 내린 결정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 로마를 통치하는 황제도, 로마에 반기를 든 민족을 처단하는 장수도 신이 함께하는 한, 성공하는 한 도덕적이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까지 이어진 로마 제국의 유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로마 시대의 역사는 책과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지며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아는 것을 넘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과 사고를 들여다봄으로써 로마 제국의 역사를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막스 갈로의 소설을 통해 로마를 읽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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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나관호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www.bigfighting.co.kr)라는 타이틀로 메일링을 통해 글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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