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것이고, 피해를 주면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마음이 더 정확하려면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 내어 놓아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면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인 판단이 될 것입니다. 대한항공 사주 일가의 일명 ‘갑질 논란’의 핵심은 ‘사람에게 잘 대했는냐? 막 대했느냐?’일 것입니다.이것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프레임에 넣으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이유는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고 정신적인 피해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전, 나를 극진히도 사랑하셨던 가시고기 아버지 이야기를 쓰면서,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인 ‘아버지와의 소고기 무국이야기’를 인터넷신문에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평소 존경하는 형님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 소고기 무국 먹으러 가야지!” 나는 그 문자를 받고 찡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생각했습니다. ‘참 고맙네. 역시, 참 좋은 사람이야. 감동이네. 반응도 빠르네. 나를 깊게 생각해 주시는구나. 고맙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배우고 싶은 성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앞길을 열어주시려 애쓰시고, 여러 가지 신경을 써주시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식사를 대접하러 가도, 꼭 식사비를 본인이 내십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중요한 삶의 코드입니다. 그래서 그 형님 목사님을 더욱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형님 목사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운 마음에 저도 반응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배 목사님은 어디를 갈 때 마다 나를 오라하고 챙겨주십니다. “오늘은 뭐하시나? 식사 같이 하지.” “오늘은 뭐하시나. 지금 어디요? 어디 좀 같이 갑시다.” 어느 날은 가보았더니 성도 심방길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은 영적 교제도 나누면서, 나에게 오리고기를 대접해주고 싶은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임원 모임을 하는데, 그곳에서 사람들과 교제하며 식사를 같이 나누도록 나를 오라고 했습니다. 인맥을 넓혀 주시는 배려입니다. 그리고 기도원 확장 공사를 하는데 같이 동행해 건강한 식사를 수시로 대접해 주시고, 비전도 나누고, 자연을 바라보며 힐링하도록 나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갈 때면 기도원이 있는 지역에서 농부나 상인들도 돕고, 나를 섬기기 위해 참외나 찐빵, 뻥튀기도 항상 사주십니다. 항상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나를 보자고 합니다.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그 깊은 마음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 그렇게 섬기겠습니다.” 좋은 분들입니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삶이 아름답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섬기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국내외 지인들 © 나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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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는 20여 년 전에 알게 된 기자입니다. 그런데 소식이 없다가 4년 전, 나를 찾아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웠는데, 이젠 빚은 다 갚은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잡지 발행인으로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너무 반가웠고, 연락해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대화 중, 잡지 발행에 재정적 어려움이 좀 있어 매달 굽실거리며 돈을 꾸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달도 직원 디자이너 월급을 제때 못 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좋은 지인인데 어떻게 하지. 굽실거리며 꾸는 모습이 좋지 않은데.’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준비하려고 통장에 모아둔 돈 일부를 그에게 빌려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큰 돈이었습니다. 그는 전화를 해서 나에게 조금 더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매달 갚으시고, 은행처럼 넣었다가 뺐다하면서, 순환시켜 사업이 잘될 때까지 제정공백 메꾸세요. 약속만 잘 지키면 되지요.” 그런데 태도가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4년 동안 1원도 보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전화도 안받고, 어디 사는 지도 모릅니다. 잡지사를 찾아갔더니 어디로 옮긴 상태입니다. 카톡을 가끔 보내 상환을 해달라고 하지만,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다릅니다. 강남에 살면서 큰 공연기획도 하고, 자기 개인발표회와 강의도 하고, 해외취재도 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외식도 즐깁니다. 누가 봐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설마 했는데 나쁜 사람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지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려워서 그러겠지. 안 갚지는 않겠지!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를 축복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답이 없습니다. 또 나쁜 사람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앞길을 막고, 거짓 루머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사울이 다윗을 괴롭힌 것처럼 나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잘 안됩니다. 내가 가야할 자리나, 길목을 미리 차단하곤 했습니다. 상황을 아는 내 주변지인들 말합니다, “경쟁상대로 아는 거야.”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까지 동원해 앞길을 막곤 합니다. 그 직원은 권력자를 이용해 여러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러 사람에게 나쁜 사람의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미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를 하는데 이런 마음 속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끼리 싸우면 누가 좋아하겠느냐?” 그 후, 그를 용서했고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내 삶을 해석하고, 말씀 따라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축복하며 응원가 불러주는 나의 귀한 지인들 © 나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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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수백 권씩 사주신 목사님, 성도에게 커피를 손수 타주며 섬기는 목사인데 나에게도 커피를 만들어 주며 진심으로 대해주는 좋은 목사님, 이 시대 정치, 경제, 사회각 분야 리더 어르신들, 나를 존중하며 내 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돕는 제자 부부 목회자,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인도의 이방인 목사들, 진료비를 받지 않고 나의 다리를 치료해 주는 의사 원장님과 직원들, 칼럼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한 인터넷 신문 발행인 목사님, 찬양으로 감동을 준 성악가 교수님, 아름다운 모임마다 항상 초청해 주는 장로님과 목사님, 홍삼과 건강식을 항상 만들어주는 처제들, 치매 어머니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초청해준 아나운서 친구와 피디, 작가 분들, sbs 신우회 예배에서 만난 기도하는 탤런트들, 좋은 원고 청탁해주는 기자들, 특히, 국가와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기관 대표님들의 나를 향한 사랑과 관심... 많은, ‘좋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주변을 살피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감사를 전해봅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글 / 나관호 목사(작가, 칼럼니스트, 문화평론가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치매환자 가족멘토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 / 기독교윤리실천 200대 강사에 선정된 ‘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전문가’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생각과 말을 디자인하면, 인생이 101% 바뀐다> 저자 / <뉴스제이> 발행인 ) |